여행
-
흘러간 어느 여름날, 러시아 여행의 추억 - 05.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 ②여행/2016 러시아 여행 2024. 9. 2. 23:30
러시아에서 맞는 첫 번째 아침,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일정이 촉박했기 때문에 나와 K는 빠르게 숙소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이날 하루 동안 우리는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의 명소들을 돌아보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탑승할 준비를 해야 했다. 우흐 뜨이, 블린! (Ух ты, блин!) 먼저 우리는 숙소 건너편에 위치한 음식점 '우흐 뜨이 블린!' (Ух ты, блин! / 오 그대, 블린이여!)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나와 K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대략적인 동선을 정했다. 이때 러시아의 전통음식 블린(Блин, Блины / 단수형: 블린, 복수형: 블리니)을 처음 먹었는데, 얇고 촉촉한 크레이프(혹은 전병)와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달고 짠 속 재료의 조화가 매우 내 입맛..
-
흘러간 어느 여름날, 러시아 여행의 추억 - 04.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 ①여행/2016 러시아 여행 2024. 8. 19. 01:24
첫인상새로운 세계를 여행할 생각에 들떠있던 나와 K에게, 러시아가 보여준 첫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상에서 우리를 처음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커다란 군용 항공기들이었다. 당장이라도 출격할 듯이 활주로 한편에 정렬한 군용기들을 지나서, 나와 K는 큼지막한 견장을 단 입국 심사관들 앞에 섰다. "Турист?" ("관광객?")"Да, Я турист." ("네, 나는 관광객입니다.")"(여권에 도장을 내려찍는다.)쾅!" 입국 심사관의 매서운 눈빛이 녹색 정복과 함께 어우러져 굉장한 위압감을 뿜어냈다. 이후에도 계속 경험했지만, 러시아 공공기관 직원들의 태도는 매우 딱딱하고 고압적이었다. 한국과 같은 서비스는 절대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다행히 공항 밖으로 나오자 무거웠던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졌다..
-
흘러간 어느 여름날, 러시아 여행의 추억 - 03. 깃털처럼 가볍게여행/2016 러시아 여행 2024. 8. 7. 03:50
드디어 다가온 출국일, 잠을 설친 나는 불안과 설렘을 함께 지닌 채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버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길 위의 풍경들이 그날따라 유달리 낯설게 보였다. K와는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K의 조언대로, 우리는 이륙 3시간 전에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빠르게 출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나서 나와 K는 면세점과 라운지 사이를 거닐었다. 여행을 앞둔 K의 기분은 아주 좋아 보였다. 모든 수속을 마친 후, 나는 탑승동에서 넋을 놓고 밖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조용하면서도 바쁘게 움직이는 사물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사람들이 왜 그토록 공항의 분위기를 좋아하는지를 나도 그제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륙 30분 전, 나와 K는 푸른 눈의 승무원들을 지나 비행기에 올랐다..
-
흘러간 어느 여름날, 러시아 여행의 추억 - 02. 준비여행/2016 러시아 여행 2024. 8. 7. 02:40
러시아 여행이라는 오직 나만을 위한, 그리고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가 하나 생겼다. 그러자 답답했던 내 마음에 잠시나마 산들산들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K와의 의논 후, 우리는 돌아오는 여름방학에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널리 알려진 환상과는 달리 한겨울의 러시아는 가까운 곳조차 돌아다니기 힘들다는 후기들이 그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가능한 한 빨리 숨 막히는 이 현실을 떠나고 싶었다. 대학 친구였던 K와 자주 만날 겸, 나는 한 학기만 더 버티면서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그리고 후일을 위해서 최대한 돈을 모았다. 이미 이런저런 여행 경험이 많았던 K 덕분에 이후 우리의 준비 과정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나는 그의 도움을 받아 서툴지만 확실하게 계획을 ..
-
흘러간 어느 여름날, 러시아 여행의 추억 - 01. "야, 러시아 가자!"여행/2016 러시아 여행 2024. 8. 7. 01:30
2016년 1월 온몸이 시리던 겨울, 나는 대학 생활 2년을 간신히 버텨내고 방학 동안 작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학교를 자퇴하고 생계를 위해 정식으로 공장일을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야 할 때가 점점 다가올수록 방향을 정하지 못한 내 가슴 속에서는 불쑥불쑥 울화가 치밀어 올라왔고, 술을 마시는 날들이 늘어갔다. 내 청춘이 검은색 컨베이어 벨트 위로 돌돌돌 흘러갈수록 나의 마음속에는 무력함이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그러던 무렵에 갑자기 친구 K에게서 전화가 왔다."야, 러시아 가자!"' …….'지루한 저녁 잔업 후, 가뜩이나 진이 빠져있었던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의 한마디 말에 대답도 못하고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이놈이 내 형편을 알면서..
-
흘러간 어느 여름날, 러시아 여행의 추억 - Prologue. 시네마 천국여행/2016 러시아 여행 2024. 8. 7. 00:07
나는 내 친구 K와 함께 카페에서 노닥거리는 시간을 좋아한다. 특히 카페의 유리창가에 앉을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구수한 커피 향과 안락한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투명했던 통유리창에는 어느샌가 K와 함께 경험했던 잊지 못할 추억들이 스르르 스쳐 간다. 마치 잔잔한 고전 영화 한 편을 다시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에, 나는 장난 삼아 이 시간을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1988년 영화)'이라고 부른다. 며칠 전에도 따가운 여름 햇빛을 피할 겸, 나는 으레 그 '시네마 천국'을 기대하며 K와 함께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서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다가 잠시 조용해진 그 순간, 나는 버릇처럼 자연스럽게 바로 옆 유리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유리창에는 나와 K의 얼굴이 비쳤다. 러시아의 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