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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어느 여름날, 러시아 여행의 추억 - 04.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 ①여행/2016 러시아 여행 2024. 8. 19. 01:24반응형
첫인상
새로운 세계를 여행할 생각에 들떠있던 나와 K에게, 러시아가 보여준 첫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상에서 우리를 처음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커다란 군용 항공기들이었다. 당장이라도 출격할 듯이 활주로 한편에 정렬한 군용기들을 지나서, 나와 K는 큼지막한 견장을 단 입국 심사관들 앞에 섰다.
"Турист?" ("관광객?")
"Да, Я турист." ("네, 나는 관광객입니다.")
"(여권에 도장을 내려찍는다.)쾅!"
입국 심사관의 매서운 눈빛이 녹색 정복과 함께 어우러져 굉장한 위압감을 뿜어냈다. 이후에도 계속 경험했지만, 러시아 공공기관 직원들의 태도는 매우 딱딱하고 고압적이었다. 한국과 같은 서비스는 절대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다행히 공항 밖으로 나오자 무거웠던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졌다. 우리는 배차간격이 긴 공항철도 대신에 버스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로 들어가기로 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은 이름과 달리 블라디보스토크시(市)에서 북쪽으로 40km쯤 떨어진 아르쬼(Артём)이라는 도시에 있다.)
"Владивосток! Центр?" ("블라지바스똑! 시내로?")
"Да!" ("그래!")
그렇게 우리는 통나무 팔뚝과 멋진 콧수염을 가진 기사님이 운전하는 107번 버스(버스라기에는 매우 작은 하얀색 밴이다.)에 올라탔다. 요금은 1인당 120 루블, 캐리어 같은 큰 짐이 있다면 100 루블을 추가로 내야 했다. 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시내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차 안이 매우 좁고 승차감이 좋지 않기 때문에, 멀미가 있는 사람들은 가능하면 공항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더 좋다.)
감사하게도, 버스에서 우리는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한 러시아 여성분의 도움을 받았다. 그녀가 기사님께 부탁을 드린 덕분에 우리는 블라디보스토크 역 앞의 정류장까지 가지 않고, 숙소와 가까운 곳에서 내릴 수 있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 서늘한 바람이 내 코에 바다 내음을 실어 왔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한국의 뜨거운 공기에 싸여있었던 나와 K는 순간 흠칫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만 얇은 반팔 차림이었고, 현지인들은 긴 옷을 입거나 외투까지 걸치고 있었다. 갑자기 확 달라진 공기에 우리는 헛웃음을 쳤다.
날씨가 흐려서 조금 아쉬웠지만, 여러 문물이 혼재된 블라디보스토크의 첫인상은 굉장히 신기했다. 빛바랜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로 난생처음 보는 서양식 건물들이 그 존재감을 자랑했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슬라브인과 동북아인의 모습이 공존했다. 그리고 도시 곳곳에 드리운 해무(海霧)가 이런 이국적인 풍경에 신비함을 더해주었다.
슈퍼스타 게스트하우스
이국적인 풍경 속을 뚜벅뚜벅 지나서 나와 K는 러시아에서의 첫 번째 밤을 지낼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 '슈퍼스타 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은 한국분이었는데, 무척 쾌남이셨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근한 동네 형님처럼, 이틀만 머물다 떠날 우리에게도 이것저것 챙겨 주셨다.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근처 통신사 대리점에서 심(SIM) 카드도 쉽게 살 수 있었다. 러시아 통신사 엠떼에스(МТС/MTS) 심카드의 가격은 한 장에 500 루블, 러시아 전역에서 1개월 동안 3기가 분량의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선불 요금제였다.
저녁 시간, 게스트하우스답게 숙소의 로비가 떠들썩했다. 그와 달리 첫 해외여행에 긴장했던 마음이 풀린 탓인지 내 눈꺼풀은 시나브로 무거워졌다. 내일을 위해서 나와 K는 더 무리하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생면부지의 북쪽 나라에서 처음으로 맞은 밤, 도란도란 벽 너머로 들리는 대화 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나는 순식간에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다음편 바로보기 → 05.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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