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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리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作, 1985)
    책 리뷰 2022. 11. 1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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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여성 전쟁영웅들의 숨겨졌던 희생과 고난 이야기-

     

     

      최근 언론을 통해 국제적 갈등에 대한 소식이 많이 들려옵니다. 제가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글을 쓰는 지금도 이 곳에서 7,500 km 떨어진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 중입니다.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고 오히려 주변국들이 관여하며 확전 가능성도 보입니다. 러시아와 유럽은 80년 전 그토록 끔찍했다던 대조국전쟁(독소전쟁, 1941~1945)이 남긴 피의 교훈을 이제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전쟁이 머나먼 유럽 땅의 일이라고만 여기기에는 여기 대한민국의 주변 상황도 항상 불안정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대만 분쟁의 위험성이 심각해지는 동시에 대한민국에 대한 북한과 중국의 위협도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 누구보다도 전통적, 지정학적으로 전쟁을 기억하고 경계해야 할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대다수 한국인들은 전쟁과 분단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어버린 듯 살고 있습니다. 비극의 역사는 과연 반복될까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우려와 관심을 갖던 중 우연히 방문한 서점에서 이 책의 제목이 단번에 제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책의 내용에 빠져들었습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50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과 전쟁이라는 딱딱하고 가늠할 수 없는 주제를 작지만 위대한 여성 전쟁영웅들의 담담하고 생생한 이야기로 풀어내어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이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과거 대조국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던 200여명의 여성들의 목소리를 다음과 같이 열 일곱개의 장으로 구성하여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작가의 일기장에서 발췌한 기억들. 그녀를 작가의 길로 이끈 어린시절의 전후 사회 환경.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지워졌다가 복구한 이야기들. 권위적인 검열당국과의 마찰들. (1.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다.)

     

    -7년간 이어질 인터뷰의 시작. 천진난만한 소녀들이 냉혹한 저격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생전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의 당혹스러운 감정들을 듣는다. (2. 그 일은 생각조차 하기 싫어)

     

    -1941년 소련은 여성들까지 최일선 전투에 동원한다. 저마다의 동기와 사연을 가지고 수많은 여성들이 죽음의 전쟁터로 향한다. (3. 얘들아, 더 자라서 오렴… 너희는 아직 어리단다…)

     

    -냉혹한 전쟁터에서 나약한 개인이 겪었던 비참한 기억 반대편에는 영원한 영웅으로서 좋은 것만 간직하고 싶은 심리도 존재한다. (4, 나 혼자만 엄마한테 돌아왔어…)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전쟁의 기억. 전쟁은 세월이 흘러도 지울 수 없는 고통과 후유증을 남긴다. (5, 우리집엔 두 개의 전쟁이 산다…)

     

    -전쟁은 끔찍한 후유증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긍정적 태도로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있는 그대로 자랑스럽게 받아들인 한 여성, 발렌티나 파블로브나의 이야기를 듣는다. (6, 전화기는 사람을 쏘지 않잖아…)

     

    -야전병원에서 목격한 죽음들(7, 우리는 작은 메달을 받았어…)

     

    -올가 야코블레브나 오멜첸코가 들려주는 참혹한 전투와 야전병원 이야기. 현 시대의 사람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현 시대의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싶지만 한 인간의 영혼의 공간을 탐색하는 일은 매우 난해하고 당혹스럽다.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고자 한다. (8, 그건 내가 아니었어…)

     

    -벨라루스 전쟁영웅의 두 딸, 바실리예브나 자매의 이야기. 자매 역시 참전하여 드넓은 전선을 누볐다. 소녀가 전쟁의 참혹함을 겪으며 단시간에 강인한 여인이 된다. 전후 4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도 전쟁의 참혹한 기억은 잊히지 않고 병사들의 눈빛으로 영원히 남아있다. (9, 지금도 그 눈길이 잊히지 않아…)

     

    -최전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후방에서도 승리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전투지원임무를 수행한 수많은 여성들이 존재한다. 전투부대원들과 똑같이 그녀들에게도 전쟁의 참혹한 기억과 후유증이 남아있다. (10, 우리는 쏘지 않았어…)

     

    -남성적이고 거친 전쟁터의 분위기 속에서도 여성성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여군들의 일화. 신체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임무 수행을 해낸 여군들의 일화. (11. 군인이 필요하다는거야… 아직은 더 예쁘고 싶었는데…)

     

    -남자들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공병대에서 신체적 고통과 차별을 견디며 임무를 수행한 여군 공병의 이야기. (12. 아가씨들! 공병대 지휘관은 오래 살아야 두 달이라는 거, 알고나 있소…)

     

    -참혹한 전쟁터에서도 사랑은 존재한다. 사랑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어서 많은 여성들이 그때의 기억을 잘 드러내지 않고 수십년이 지나도록 마음 속에 숨겨왔다. 전쟁터에서 갖은 고생을 한 그녀들에게 전후 사회는 성적인 멸시와 오해들로 또다시 상처를 주었다. (13. 한번만 볼 수 있다면…)

     

    -민간인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전쟁을 수행했고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가족과 이웃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죽음의 골짜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14. 씨감자에 대하여…)

     

    -임무 수행과 모성애 사이에서 고뇌하고 고초를 겪은 여성들의 이야기. 전쟁도 어쩔 수 없는 모성애 이야기. (15. 엄마, ‘아빠가 뭐예요?…)

     

    -이미 전쟁터의 방식에 익숙해진 채로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다. 평화에 적응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전후의 일상이 마냥 평화롭지도 못했다. 여전히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권위주의 정부가 시민들의 일상을 감시하며 불안에 떨게 했다. (16. 그리고 그녀는 심장이 있는 곳에 손을 갖다댔어…)

     

    -마지막 장. 이 책에 소개된 모든 이야기들을 대표하는 듯한 한 여성의 이야기. 평화가 찾아왔지만 전쟁은 이미 그녀에게 끔찍한 기억을 남겼고 사회는 그녀의 참전 경험을 오해하고 무시한다. (17. 갑자기 미치도록 살고 싶어졌어…)

     

      이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처절한 수많은 목소리들이 작가의 세심한 관심 그리고 공감과 어우러져 읽는 이의 머릿속에 울려 퍼집니다. 읽는 이의 마음 속을 옥죄며 콕콕 찌릅니다. 마치 우리네 할머니들이 손주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생생함과 친밀함을 바탕으로 독자들은 책의 내용에 빠져듭니다. 이런 서술 방식을 통해 매우 효과적으로 전쟁의 참혹함과 반전의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또 기존의 전쟁을 소재로 한 수많은 작품들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잘 다루어지지 않던 전쟁 당사자로서의 여성들의 내밀한 경험과 이야기를 그녀들이 직접 고백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매우 독특하고 신선합니다. 전쟁을 여성 당사자의 관점에서 서술하여 기존 남성 중심적 전쟁관에서 벗어난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고 프로파간다와 사회적 무관심에 가려졌던 전쟁 속 여성들의 고난과 수모를 가감없이 드러내어 또 하나의 진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대조국전쟁(독소전쟁)에 대하여 러시아(소련)의 프로파간다와 역사책,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피상적으로만 접해왔습니다. 러시아(소련)정부의 프로파간다와는 달리 수많은 참전 여성들이 전후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자세히 알게 되었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이야기 속 여성들의 분노와 슬픔을,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그녀들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 위대한 그리고 가늠할 수 없는 아픔을 숨겨왔던 여성 영웅들에 대한 공감과 함께 여성의 입장에서 겪는 전쟁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생각의 줄기를 바탕으로 반전, 젠더 갈등, 극단적 상황에서의 인간 심리,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비판 등 현 시대의 우리들도 충분히 생각해 볼만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고민도 할 수 있는 좋은 독서기회가 되었습니다. 많은 면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국제적 충돌과 사회갈등이 잦아지는 이 시기에 많은 이들이 읽고 공감하며 함께 평화에 대해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가에 대하여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우크라이나 태생의 벨라루스 언론인입니다. 전쟁 직후의 여전히 죽음의 기억이 살아있는 사회 분위기와 가정에서 자란 작가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가르치는 전쟁과 민중들이 이야기하는 전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진실은 무엇인지, 진실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던 작가는 알레시 아다모비치(1927~1994, 벨라루스 출신의 구 소련 작가)와 같은 작가들의 삶의 목소리를 생생히 전달하는 소설들을 읽고 숨겨진 진실에 대해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이후 그녀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다년간 수백명을 인터뷰하고 모은 이야기들을 수기형식으로 쓰지만,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독특한 다큐멘터리 산문 형식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영혼이 느껴지는 산문,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소설 코러스라고 불리는 장르를 창시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전달방식으로 그녀의 작품들은 소련 현대사 속 감춰진 이야기들을 끄집어냅니다. 정권의 프로파간다 대신 실제 사건 한가운데 있던 민중들의 담담하고 처절한 목소리가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작가의 첫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시작으로 천천히 기회가 될 때마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의 리뷰도 작성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그녀는 권위주의 정권의 지속적인 압력과 감시를 받았습니다. 작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고, 마침내 그녀의 첫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1985년 출간되었습니다.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200만부 이상이 팔리며 큰 관심을 받았고 그녀의 이름과 소련 여성 전쟁영웅들의 가려졌던 희생과 고난이야기를 널리 알렸습니다.

      2015년에는 책체르노빌의 목소리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2020년 벨라루스에서 일어난 반정부 민주화 시위 이후 독일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2022년 가장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 벨라루스와 러시아 정부를 비난하는 언급을 하는 등 계속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권위주의 정부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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